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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

찰스 맨슨 맨슨 패밀리 생애 폴라스키 가 살인

by 생활정보와 뮤지컬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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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슨 패밀리와 찰스 맨슨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범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맨슨 패밀리라 불리는 범죄 집단을 조직하여 이끌었습니다.

 

1969년 8월, 찰스 맨슨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인 샤론 테이트와 그 친구들을 살해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 공격은 로만 폴란스키의 빌라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매우 잔인하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살인인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찰스 맨슨 맨슨 패밀리 생애 폴라스키 가 살인
찰스맨슨

 

찰스 맨슨은 직접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이 살인 사건을 계획하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맨슨은 종교적, 사회적 및 인종적인 동기로 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사상과 말씀은 비틀어진 철학과 폭력에 대한 강박적인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이 살인 사건은 당시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으며, 히피 문화와 반문화 운동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맨슨은 후에 잡혀 기소되었고, 1971년에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사형은 사회적 이유로 연기되어 무기형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러나 찰스 맨슨은 2017년 11월에 감옥에서 자연사로 사망하였습니다.

 

찰스맨슨의 생애

맨슨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인마로 여겨지며, 그의 범죄와 인물은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찰스 맨슨은 1934년 11월 12일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맨슨의 어머니의 성은 매덕스(Maddox)였습니다. 맨슨은 후에 새로운 아버지인 윌리엄 유진 맨슨(William Eugene Manson, 1909 ~ 1961)의 성을 따라 개명하여 맨슨(Manson)이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맨슨은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어머니인 캐슬린(Kathleen, 1919 ~ 1973)은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었으며, 맨슨의 주장에 따르면 창녀였다고 합니다. 맨슨은 어머니와 삼촌이 강도질을 벌이다 체포되자 이모 집에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맨슨은 위탁 가정에 맡겨지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캐슬린은 맨슨을 엄격한 규율을 가진 한 가톨릭 수도원에 맡기게 되었으나, 맨슨은 교육을 핑계로 구타와 체벌을 당하며 견딜 수 없어 도망쳤습니다. 그 후 여러 교화 시설을 거치며 범죄를 저질렀으며, 매번 시설에서 탈출하여 강도질이나 절도 등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맨슨은 소년원에 수감되었고, 그곳에서는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 1954년 가석방되어 이모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20세 때 맨슨은 5살 연하의 여성과 결혼했으며, 처음 몇 달 간은 평범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돈이 부족해지자 다시 절도를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맨슨은 아내와 함께 훔친 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려다 체포되어 자동차 절도로 기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결국 1956년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해에 아내인 로절리 진 윌리스가 아들을 출산하고, 맨슨이 수감 중일 때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도주했습니다. 그러나 맨슨은 가석방 심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자동차를 훔치려다 실패했고, 이후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1958년에 석방된 맨슨은 강력 범죄를 일으키며 교도소를 자주 드나들었으며, 17년의 시간을 연방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1967년 석방된 후, 맨슨은 히피 문화를 추종하는 패거리와 함께 생활하며 맨슨 패밀리를 조직했습니다. 맨슨은 강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패거리를 휘어잡아 미국 전역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맨슨 패밀리는 폭력과 범죄를 일으키며 그의 지시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맨슨의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그의 범죄와 인물은 여전히 사회적인 이슈와 탐구의 대상이 됩니다.

 

맨슨패밀리의 시작

찰스 맨슨은 히피 문화의 화두였던 '사랑' 개념을 이용하여 자신을 신격화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연상시키기 위해 긴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는 등의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맨슨 패밀리는 LSD와 같은 마약을 상시적으로 복용하며 난교 파티를 벌였으며, 맨슨 자신은 그들에게 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적 관계를 갖길 원했다고 합니다.

 

맨슨 패밀리는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숙소를 제공받기 위해 여성 구성원들을 성적 상대로 제공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맨슨은 음악인으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음반을 발매하는 시도도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비치 보이스의 멤버들과도 접촉하여 협업을 시도했으며, 비치 보이스 멤버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안면을 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비치 보이스 멤버들은 맨슨 패밀리가 범죄자들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비치 보이스의 멤버이자 데니스 윌슨의 차남인 데니스 윌슨은 히피 생활을 하던 중 맨슨과 만나게 되었고, 맨슨을 레코드 회사에 소개시켜주었습니다. 그러나 데니스는 맨슨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데니스와 맨슨의 협업은 몇 차례의 다툼으로 이어졌으며, 맨슨이 데니스의 가족을 협박한 뒤 데니스가 맨슨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습니다. 맨슨은 여전히 데니스에게 집착하였지만, 데니스는 거부하고 맨슨의 협박도 거절했습니다.

 

이후 데니스는 맨슨을 비난하며 인터뷰에서도 그를 언급했습니다. 일부 전기 작가들은 데니스가 마약과 술에 빠지면서 맨슨을 끌어들였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또한, 데니스와 맨슨의 연결고리로써 샤론 테이트의 지인인 테리 멜처가 데니스의 지인이었기 때문에 연관성이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은 맨슨 패밀리의 가장 유명한 범죄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은 맨슨 패밀리 멤버인 찰리 왓슨, 수전 앳킨스, 패트리샤 크렌빈켈, 린다 카사비앙 등 4명이 LSD에 취한 채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집에 침입하여 그의 아내와 손님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일입니다. 이 사건은 1969년 8월 8일 밤과 9일 새벽 사이에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들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샤론 테이트

폴란스키의 아내이자 배우로, 당시 임신 8개월이었지만 가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살해되었는데, "죽고 싶지 않다. 아기를 낳고 싶다"라고 빌었지만 맨슨의 추종자였던 수전 앳킨스가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전해집니다.

 

스티븐 패런트

당시 18세로, 대학 진학을 위해 학비를 벌기 위해 투잡 중이었습니다. 다른 피해자들과는 달리 폴란스키 집의 관리인 숙소에 거주하고 있던 윌리엄 개러슨에게 스테레오를 팔러 갔다가 거절당하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가해자들에게 걸려 죽었습니다.

 

아비게일 폴저

폴저 커피 회사 상속자로, 28차례의 칼로 찔려 살해되었습니다.

 

보이첵 프라이코스키

폴저의 애인이었고 영화 제작자로 소개되었지만 부자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총탄 2발과 칼질 13번을 머리에 받고, 몸에는 51번의 칼질을 당해 즉사했습니다.

 

제이 세브링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로, 돈을 주면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총탄 1발과 칼질 7번으로 살해되어 시체가 거실에 목 매달린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사건 이후 밝혀진 사실

흥미로운 사실로는 이 사건 이후 맥퀸의 전 부인이 밝힌 이야기입니다. 원래 이 사건에는 스티브 맥퀸도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다른 여자와 만나기로 결정하여 사건을 피했습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는 맥퀸의 이름이 맨슨 패밀리의 암살 목표 리스트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맥퀸은 당시 유부남이었지만 바람을 피워 사건에서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맥퀸은 항상 매그넘 권총을 소지하고 다녔다고 전해집니다.

 

범인들은 처음에는 폴란스키가 범행의 목표였으나 그 집의 전 주인이었던 음반 제작자 테리 맬처의 데모 테이프를 평가하지 않아서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폴란스키 부부는 알토벨리의 집 중 하나를 잠시 빌린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화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폴란스키는 사건 이후에 영화 <맥베스>를 제작하는데, 폭력과 잔혹한 장면이 많아 평론가들의 비판에 "당신들은 작년 8월의 내 집을 보지 못했다. 난 '유혈이 낭자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건이 벌어진 집은 올리비아 허시의 에이전트인 루디 알토벨리의 소유였습니다. 허시도 이 집에 딸린 손님용 별채에서 살 계획이었지만 사건으로 인해 단 몇 주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허시는 이후 집으로 이사해 한동안 거주했으며, 경찰이 사건 조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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