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두 최초 남성 연쇄살인범 생애 범행 특징 사형
본문 바로가기
범죄심리학

김대두 최초 남성 연쇄살인범 생애 범행 특징 사형

by 생활정보와 뮤지컬 2023. 7. 11.
반응형

김대두(1949년 11월 17일 - 1976년 12월 28일)는 대한민국의 연쇄살인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5년에 범행을 시작하여 55일 동안에 17명을 살해하고 다수의 중상을 입혔습니다. 김대두는 특히 아이들을 포함한 피해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범행은 공포와 경악을 불러일으켰고, 범행 수법과 동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1976년에 사형이 확정되고 집행되었습니다. 김대두의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기록된 남성 연쇄살인범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대두 최초 남성 연쇄살인범 생애 범행 특징 사형
김대두

 

김대두의 생애

김대두는 1949년 11월 17일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3남 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대한 의욕이 없었고 탈선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노력으로 광주로 보내져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김대두의 방황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17세가 되는 해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농사일을 돕던 김대두는 돈을 벌고자 목포의 가구점에 취업하였지만, 잠시 후 그만두고 전라도 지역에서 머슴 일이나 심부름 일을 하며 여러 종류의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몇 년 뒤 김대두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며칠간 집에서 쉬다가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전셋집을 얻고 무직 생활을 하게 됩니다. 돈이 없어 군대에 가려 했지만, 그 당시에는 국방비 문제 등으로 인해 군면제가 많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체질적으로도 군대 면제 조건에 해당하여 군대 면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폭력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전과 2범의 범죄자가 되고, 징역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두 차례 수감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었으며, 친척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전과자로서 무시당하는 경험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소외감과 불만으로 인해 김대두는 점차적으로 살기를 품게 되었습니다.

 

김대두 범행의 시작

김대두는 1975년 8월 12일에 강도 목적으로 첫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55일 동안 17명, 그 중에는 아이들도 포함된 총 17명을 살해했습니다. 특히 1975년 9월 25일부터 10월 2일까지 경기도의 외딴집을 주요 범행 대상으로 삼아 1주일 사이에 11명을 살해하고 2명을 중상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에서 "야수의 짓"이라고 불렀습니다.

 

김대두는 첫 살인 후에는 교도소 동기인 김해운과 함께 범행을 저지렀습니다. 그들은 서울로 향하려고 했지만 헤어져서 각자 계속해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김대두는 검거 하루 전에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청년에게 접근하여 공범을 제안했지만 청년이 도망쳐 달아나자 살해하고 그의 청바지를 가져갔습니다. 이때 피해자의 청바지는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김대두는 세탁소에 맡기고 어설픈 변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세탁소 직원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진술 번복과 변명

김대두는 체포된 후에도 다양한 변명을 하였으며, 경찰의 수사에도 계속해서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가 언급한 동네로 가서 조사를 벌였지만 그와 싸운 사람은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대두는 자백하여 이전에 저지른 연쇄살인의 세부사항을 밝혔습니다. 그 후 김해운도 체포되었습니다. 수사는 서울청량리경찰서에서 시작되었지만, 이후 서울시경찰국 형사기동대로 이관되어 대규모 수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김대두의 검거 당일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서 경찰서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박경원 내무장관과 참모부장도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김대두는 사건에 대한 모든 죄를 인정하였으며, 현장검증 후에는 웃으며 껌을 씹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여 국민들을 경악시켰습니다.

 

김대두 범행의 특징

김대두가 범행을 저지른 과정에서는 특히 아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 특징적입니다. 이는 프로파일러들이 그의 공포심이 아이들이 우는 소리에 자극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입니다. 유영철과 같은 연쇄살인범들은 주로 여성이나 노인을 대상으로 살해했지만, 김대두는 남성이나 아이들을 주로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60세 할아버지, 71세 할머니, 노부부 등을 살해했었습니다.

 

기독교로 전향

김대두는 사건 당시에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으며, 옥중에서 많은 신자들을 얻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기 수감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대두는 조금씩 잘못을 깨닫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사형선고

김대두와 공범 김해운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2심에서는 김대두에게만 사형이 확정되고 김해운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김해운은 1993년에 복역을 마치고 가석방되어 순천시로 돌아갔지만 그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대두는 사형이 확정된 후 1976년 12월 28일에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김대두가 처형되기 직전에는 정신적인 측면을 연구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변호인 이상혁도 감형을 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김대두는 사형 집행 전에 전과자를 냉대하지 말고 잡범과 중범죄자, 초범과 재범을 분리수감하여 범죄를 배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사형 집행은 사건이 명백하고 다수의 살인이 있었던 사건의 주범으로 인해 신속하게 집행된 것이었습니다.

반응형